새절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다. 조금 더 걸어가자 송내과의원이 보였다. 진료가 끝난 병원에선 기타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료실은 그가 4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속에 묘사된 것처럼 아늑한 분위기였다.

 

정감 가는 동네에서 이름을 걸고 진료를 보는 의사, 송태호. 그가 오늘의 닥터후 주인공이다.

 

문과였던 송태호 원장은 어쩌다 의대에 가게 됐을까

그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40여년 전, 송 원장의 할머니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의 대장암 환자 생존률은 지금과는 천지차이. 의학 발달 수준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대였다. 수술을 받더라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수술 도중 큰 혈관을 건드려 송원장의 할머니는 스물 두 팩의 피를 수혈 받았다. 무려 9리터 정도의 양이다. 사람 몸속의 피가 체중의 8%정도라고 하니 50kg 정도였을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의 피는 4리터 정도. 몸 속의 피를 두 번 바꿀 수 있는 양을 하루 만에 수혈 받은 셈이다. 90년도 이후 송 원장이 의사가 되고 난 이후에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혈과정에서 할머니는 C형 간염에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았다. 대장암 3, 큰 희망을 갖고 시작한 수술이 아니었음에도 좋은 결과를 얻은 송 원장은 막연히 의사란 참 대단한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아마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고 송태호 원장은 조심스레 추측했다.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훗날 다시 보니 고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는 1지망, 2지망, 3지망이 모두 의사라 적혀있었다.

 

재수 끝에 의대에 입학한 송태호 원장. 의대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의사가 될 줄 알았으나, 의대생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6년 학교를 다녔고 바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했으니 겉으로 보기엔 순조로운 과정을 밟은 것 같지만 나름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오리가 사실은 물밑에서 굉장히 열심히 발을 젓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연과 운명이 만든 동네의사 송태호

첫 번째 난관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시작됐다. 왼손잡이로서의 비애는 살면서도 숱하게 있었지만, 의사가 되는 데에도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놀랍게도 수술기구는 모두 오른손잡이 기준이었다. 수술을 집도하는 게 아니라 어시스트라면 오히려 왼손잡이가 좋다. 수술하는 사람 맞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용 가위 등등 모든 기구가 오른손잡이 기준이라 왼손잡이에겐 불편함이 있었다. 송 원장은 봉합술도 익숙지 않은 오른손으로 배워야 했다.

 

왼손잡이용 수술기구가 부족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심지어 미국에도 왼손잡이용 수술기구는 많지 않다. 왼손잡이면 양손을 다 쓸 수 있으니 더 좋다는 감언이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외과 파트는 일단 마음이 내키지 않아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송태호 원장은 잠시 소아과를 갈까?” 고민했다. 사실은 내과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소아과 지망도 타의에 의해 접어야했다. 미필 남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소아과 공석은 한 자리 였는데, 전교1 등이 소아과를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송태호 원장은 내친김에 가장 공부 잘 하는 학생들만 된다는 내과를 지망하기로 마음먹는다. 성적은 140여 명 중 40 등으로 내과에 가기엔 무리가 있었고, 전공의 왕고참도 네 성적으로 무슨 내과냐면서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난 체력으로 인턴을 열심히 돌았고, 성적에서 조금 떨어지는 점수를 인턴성적으로 메꿀 수 있었는지 덜컥 합격했다.

 

그러나 레지던트 생활도 끝없는 체력전쟁이었다. 남들은 몇 시간이라도 잤지만 본인의 기초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송태호 원장은 몸을 혹사시키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어떤 때는 5일 동안 10시간도 못 잔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땐 선배들이 알아서 뭔가를 가르쳐 주는 시대가 아니었다. “묻지 않은 건, 알 수 없는시대였던 것이다. 알아서 가르쳐 주는 게 없으니 뭔가를 배우려면 다 쫓아다니면서 물어봐야 했다. 그러나 선배들도 일에 지쳐있어서 결국 낮에는 환자를 보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공부하지 않으면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극한상황이니 공부하는 것 밖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경야독은 흔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레지던트들 대부분이 열심히 공부했고, 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숙지했다. 그래서 종종 레지던트가 교수님에게 개기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교과서랑 다릅니다 교수님”, “FM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수님

 

그렇게 의사가 된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전문의 때 만났던 환자 한 명을 떠올렸다. 간경화증을 앓던 40대 남자환자였다. 간경화증이 심해지면 식도정맥류라는 합병증이 생기는데, 요즘과는 다르게 그땐 식도정맥류를 치료할 방법이 많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가망이 없는 상황까지 악화됐다. 상태가 심해 피를 토하고, 혈변을 계속 쏟았다. 환자의 가족들이 치우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환자를 안 좋게 할까봐 의료진들이 혈변을 치웠다. 그 때 환자가 가족들을 불러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송 원장은 피를 치우면서 그 과정을 지켜봐야만했다.

 

이런 일들은 몇 번이나 있었다.

 

이번엔 30대 여자 환자의 이야기다. 전신성 홍반성 난창, 그러니까 루프스라 불리는 병을 앓는 환자였다. 경과가 별로 좋지 않고 자꾸 열이 나서 입원하게 된 케이스였다. 발열의 원인을 찾는데 도무지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항생제 등 약들은 다 투여하고 있는 상태. 송태호 원장은 교수님에게 결핵약을 써보는 게 어떨까요.”하고 물어봤다. 교수는 결핵검사 결과 결핵이 아니라고 나왔는데 왜 결핵약을 쓰냐며 거절했다. 결핵약이 환자 몸에 부담을 줄까봐 그랬을 것이다.

 

환자는 점점 숨이 차고 폐가 하얗게 변해갔다. 결국 환자는 사망하고 교수님은 환자 보호자에게, 원인을 확실히 알기 위해 부검까진 아니더라도 조직검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환자 보호자는 선생님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으니 마무리도 마지막까지 지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간을 비롯한 여러 장기를 조직검사를 했다. 결국 결핵으로 결과가 나왔다

 

대개 의사들의 기억이 그렇다. 안 좋은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환자가 부담스러워 해도 우겨서 검사를 더 할 걸, 이 치료법을 썼으면 더 빨리 나았을 걸하는 반성과 후회는 환자가 잘 나아서 잘 퇴원한 경우에도 들었다.

 

모탈리티 컨퍼런스 Mortality Conference

의사가 자신의 치료과정을 되짚어보며 최선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시스템적으로도 마련이 돼 있다. 이를 모탈리티 컨퍼런스(환자의 사망 원인과 과정을 살펴 재발을 막기 위한 모임)라고 부른다. 환자가 입원한 직후부터 사망하기까지 모든 일들을 모든 교수님들 앞에서 전공의들이 발표한다. 교수들은 처치가 늦었다고 판단 되거나, 뭔가 이상한 지점이 있으면 가차 없이 지적하고 비난한다.

 

송태호 원장도 마찬가지로 모탈리티 컨퍼런스에서 자신이 맡았던 환자에 대해 발표했다. 기계에 의지해 숨을 쉬고, 의식도 없는, 연명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였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송 원장은 20분 정도 삐삐에서 울리는 콜을 받지 못했다. 피곤에 절어 잠시 의식을 잃은 탓이다. 그런데 그 20분 동안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

 

교수는 송태호 원장을 불러 세우고 물었다. 20분 동안 콜을 받지 않았느냐고. 송 원장은 사실대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피곤해서 잠시 못 받은 것 같습니다.” 교수는 일갈하고 돌아섰다. , 이 새끼야. 네 할머니여도 그랬어?”

 



 

송태호 원장은 그 말을 절대 잊지 못한다. 처음 의사를 꿈꾸게 했던 것도 할머니, 진짜 의사로서의 마인드를 갖추게끔 만든 것도 할머니였던 셈이다. 지금도 송내과의원 벽면에는 여러분들은 제 가족입니다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만성질환자의 마음가짐

환자 나이 평균 65. 환자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네의사로서, 송태호 원장은 당뇨와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본인이 환자임을 인정하라
혈압이 높게 나오면 방금 움직여서 그렇다고 하고, 혈당이 높게 나오면 오는 길에 뭘 먹었다고 하는 등 여러 핑계를 대며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이 있다. “어제 쟀을 땐 정상이었다며 혈압약 복용 시작일을 계속 늦추던 어머니를 둔 본PD는 이해하기가 쉬웠다. 송 원장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병을 인지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임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고혈압임에도 약 안 먹고 술 마셔도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만성질환들을 자식처럼 여겨라
이 말은 병을 자식처럼 여겨 떠나보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말썽을 피울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란 뜻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막 하는 경우가 있어도, 부모들은 웬만하면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려고 하죠.”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빗대,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 말도 잘 듣고 약을 잘 먹어도 병이 말썽을 피워 합병증이 생기고 일찍 죽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세 번째, 환자가 학생이라면 의사는 코치다

잘 나가는 스포츠 선수들에겐 코치가 있다. 코치들이 스포츠 선수들보다 운동을 잘 할까? 그렇지 않다. 그래도 코치는 필요하다. 선수들 스스로가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친구들이 반마다 몇 명씩은 있지 않았나? 그런 학생들은 공부하는 방식이 틀린 것이다. 출석을 잘 해도 공부도 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시험을 중간 중간 보면서 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 병원 잘 나오고 약을 꼬박꼬박 먹어도, 우리 몸이 나아지고 있는지는 검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의사의 진찰만으로 다 알 수 없는 사항들을 검사를 통해 알아보고, 코치(의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쳐야 한다.

 

번외, 글은 흘러넘쳐야 잘 나와. ‘최애는 장르문학

송태호 원장을 소개하면서 그의 글솜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송 원장은 총 4년간 조선일보에 칼럼을 게재하며 2주마다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왔다. 읽어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유머러스하고 흡입력 있는 그의 글은 정말 쑥쑥 잘 읽힌다.

 

어떻게 대한민국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에 무려 4년간이나 자신의 글을 실을 수 있었을까? 그의 글 쓰는 힘은 어디서 왔을까? 송 원장은 글쓰기 비결을 좀 알려달라는 PD의 질문에, “글은 흘러 넘쳐야 써진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말했다.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게재하기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지나자, 맨날 똑같은 문체인 것 같고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2년을 쉬었다. 2년 간 쉬며 다른 글들을 읽다보니 차곡차곡 쓸거리들이 쌓여서 넘치게 됐다. 책 읽고, 신문 읽고,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공부하다보면 천천히 차오르다가, ! 넘쳐 흐르는 지점이 있었다.

 

이렇게 탁! 흘러넘치는 경험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좋은 글들을 많이, 몰입해서 읽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송 원장은 장르문학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비뢰도나 반지의 제왕 등 판타지 물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장르문학 작가들은 안토니오 비발디 같다. 사람들은 비발디를 똑같은 협주곡 천 개를 쓴 사람이라고 평하는데 장르문학 작가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의 글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작품을 창작하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이 똑같다는 뜻이라기 보단, 디테일에서 예술성이 발생하고, 언제든 기대하는 만큼은 하는 작품들이란 의미에서다. 우리나라에선 장르문학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장르문학 작가들 몇몇은 문학성도 겸비하고 있다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절대 우울한 작품은 챙겨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점에선 의사로서의 고충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우울한 작품은 보지 않으며, 읽다가도 작품이 자꾸 우울한 쪽으로 흘러나가는 듯 하면 과감히 책을 덮는다고 한다. 매일 오랜시간동안 아픈 환자들을 마주봐야 하는 직업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이미 우울이 충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과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그는 내과를 정의 내려달라는 요구에, 내과는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말했다. 평소 내과를 자주 방문하는 본PD는 내과는 오히려 최초라는 단어와 더 어울리지 않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대부분 진료과목에서 마지막 차례는 내과의사에게 맡긴다는 송 원장의 말을 듣고 나자 납득이 됐다.

방어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행동이다. 송태호 원장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환자들의 건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온뒤 멘토로 그를 소개하는 말은 잘해서 본전 찾자. 이 말처럼 내과는 잘해야 본전 찾는 과이고, 기껏해야 본전을 찾는 과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기도 한 것이다. 최후의 방어자로서 정성을 다하는 의사. 동네의사 송태호의 건투를 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송태호 원장과 함께한 메디텔 <건강검진의 모든 것> 편을 볼 수 있다.